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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피에루이지 콜리나, 전설적인 외계인 축구 심판

by 감서 2023. 4. 30.

축구 심판에 관한 한 피에루이지 콜리나에 필적할 만한 전설적인 존재는 거의 없습니다. 1960년 이탈리아에서 태어난 콜리나는 대머리에 강렬한 눈빛, 흠잡을 데 없는 심판 기술로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심판 중 한 명이 되었습니다. 2002년 월드컵을 보신 분들이라면 기억하실 겁니다. 이 글에서는 콜리나의 커리어와 업적, 그리고 그가 축구계에서 사랑받는 인물이 된 이유에 대해 자세히 알아볼 거예요.
 

"심판은 경기를 통제해서는 안된다. 심판은 선수를 통제하는 것이다." 피에루이지 콜리나

 

어린 시절과 경력

 
콜리나의 축구에 대한 사랑은 어릴 때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어렸을 때 친구들과 축구를 하며 프로 선수가 되기를 꿈꿨습니다. 하지만 축구에 대한 열정은 그를 다른 길로 이끌었고, 심판이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는 고향인 이탈리아 볼로냐에서 경기 심판을 시작했고, 뛰어난 실력과 공정한 판단으로 빠르게 명성을 얻었습니다.
 
콜리나는 경력 초기에는 이탈리아 축구의 하위 리그에서 경기를 주심 하며 승승장구했습니다. 1990년대에 이르러서야 이탈리아 축구의 최상위 리그인 세리에 A 경기의 주심으로 발탁되면서 큰 성공을 거두게 되었습니다. 거기서부터 그의 커리어가 시작되었습니다.
 

 

외계인 심판

 
피에루이지 콜리나에 대해 이야기할 때 그의 상징적인 외모를 빼놓고는 이야기하기 어렵습니다. 대머리에 날카로운 눈빛, 무심한 듯한 태도는 그를 경기장에서 돋보이게 만들었습니다. 한국에서는 "외계인 심판"이라는 별명도 얻었습니다. 하지만 그를 전설로 만든 것은 외모뿐만 아니라 그의 놀라운 심판 기술 때문이었습니다.
 
콜리나는 디테일에 대한 집중력, 흠잡을 데 없는 판단력, 선수들의 존경을 이끌어내는 능력으로 유명했습니다. 그는 가장 치열한 상황에서도 경기의 주도권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경기장에서 그의 존재는 차분한 영향을 미쳤고, 선수들은 그가 올바른 결정을 내릴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는 경기 시작 전에 선수들의 플레이 스타일, 팀들 간의 역사, 그리고 팀의 전술 등 다양한 요인을 공부하였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경기에서 선수들의 움직임을 예상하고, 프리킥과 코너킥에서 어떤 선수가 어떤 방향으로 크로스를 올릴지를 예상하며 자신의 위치를 잡았습니다.
 
이러한 철저한 준비를 바탕으로 경기를 지도하고 모두에게 믿음을 얻는 심판이었습니다. 이름은 물론이고 경기의 모든 요소를 숙지하고, 플레이어와 팀의 특징을 정확하게 파악하며 경기를 뛰어나게 지도한 그는 매 경기에서 뛰어난 실력을 보이며 축구 팬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피에를루이지-콜리나

 

커리어 하이라이트

 
콜리나의 축구 심판 경력은 20년이 넘었으며, 그 기간 동안 전 세계에서 가장 큰 경기를 심판했습니다. 다음은 그의 커리어 하이라이트 중 일부입니다:
 
1999년에 콜리나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바이에른 뮌헨의 UEFA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 심판으로 발탁되었습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2-1로 역전승을 거둔 긴장감 넘치는 경기였습니다. 콜리나의 뛰어난 주심은 공정하고 흥미진진한 경기를 보장하는 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2002년 콜리나는 브라질과 독일의 FIFA 월드컵 결승전 주심으로 발탁되었습니다. 항상 월드컵 결승전 주심을 꿈꿔왔던 콜리나에게는 역사적인 순간이었습니다. 그는 흠잡을 데 없는 경기를 펼쳤고, 그 경기는 여전히 월드컵 역사상 최고의 경기 중 하나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2004년, 콜리나는 다시 한번 UEFA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 주심으로 발탁되었는데, 이번에는 FC 포르투와 AS 모나코의 경기였습니다. 다시 한번 콜리나는 뛰어난 활약을 펼쳤고, 경기는 FC 포르투가 3-0으로 승리하며 짜릿한 승부를 펼쳤습니다.
 

 

오심

 
이런 피에루이지 콜리나도 두 번의 유명한 오심을 범하고 맙니다. 하나는 2002 월드컵 아르헨티나 대 잉글랜드 경기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이 경기에서 아르헨티나의 수비수 포체티노가 오언을 향한 태클을 하게 되었고, 콜리나는 파울을 선언하여 페널티킥이 주어졌습니다. 하지만 경기 후, 오언이 할리우드 액션임을 인정했습니다.
 
다른 오심은 2005년 챔피언스리그 4강 첼시 대 바르셀로나 2차전에서 일어났습니다. 이 경기에서 존 테리가 헤딩골을 넣었는데, 이때 바르셀로나의 선수 카르발류가 골키퍼를 미는 행위를 했습니다. 그러나 콜리나는 이를 인지하지 못하고 득점을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경기 후, 콜리나는 경기를 다시 확인하고 이 실수를 인정하며 사과했습니다.
 
이러한 일들은 오히려 콜리나의 심판 역할에서 높은 수준의 책임감과 정확성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는 항상 공정성을 중요시하며, 이러한 가치를 경기장에서 실천했습니다. 이러한 열정과 전문성으로 인해, 콜리나는 축구 팬들에게 사랑받는 심판 중 한 명으로 남았습니다.
 

은퇴와 전설

 
2005년 콜리나는 20년 넘게 이어온 심판 생활을 끝으로 심판에서 은퇴했습니다. 하지만 그가 축구계에 끼친 영향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는 심판 큐레이터가 되어 차세대 심판들을 교육하고 계발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으며 UEFA와 FIFA의 심판 위원회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또한 축구 해설자로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축구 심판으로서 콜리나가 남긴 전설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는 역사상 최고의 심판 중 한 명으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그의 흠잡을 데 없는 실력과 확고한 프로정신은 수많은 사람들이 그의 발자취를 따르도록 영감을 주었습니다. 그는 언제나 축구의 진정한 전설로 기억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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